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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이야기/수필과 소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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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사범님?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감도는 겨울의 도장. 텅 빈 공간을 울리는 숨소리마저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맨발로 디딘 나무 바닥에서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련복 한 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한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 섰다. 호흡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비로소 상대의 기척, 그 미묘한 움직임과 내쉬는 숨결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氣)의 줄다리기. 정신을 다른 곳에 두는 순간, 흐름을 놓치고 말 것이라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지독했던 추위는 희미해지고,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열기를 뿜어내는 듯, 수련의 몰입이 가져다준 뜨거움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내 생애 첫 시합, 기억은 없는데 이겼다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마치고 상쾌하게 샤워까지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사범님이 "잠깐 보자"며 저를 호출하셨습니다. (두둥!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죠.)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너, 이번에 시합 한번 나가볼래?""네? 시합이요? 제가 수련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시합입니까?""에이, 경험 삼아 한번 나가봐. 재밌을 거야." (사범님의 '재밌을 것'이라는 말…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얼떨결에 제 인생 첫 시합 출전이 결정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시합 준비'라는 거창한 이름의 훈련이 시작되었죠. 근데 뭐, 시합 준비라고 해봐야… 솔직히 평소 하던 수련에다가 마무리 운동으로 시합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도장 수련의 끝에서, 감사함을 생각하다 더운 여름날의 수련은 언제나 쉽지 않다. 두꺼운 도복은 금세 땀으로 흥건해지고,등 피부와 도복 사이로 땀방울이 몽글몽글 맺힌다.격렬했던 움직임이 멈추면, 헉헉거리던 거친 숨소리가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낸다.하지만 이내 그 숨소리마저 점점 잦아들고, 도장 안에는 고요함이 찾아온다.사범님의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올 뿐, 적막함이 공간을 감싼다.몸은 고단하지만, 정신은 맑아지는 수련 막바지의 독특한 평온이다.그때, 적막을 가르는 사범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좌~~""묵~~~상~~" 명상 자세로 앉아 짧은 고요 속으로 빠져든다. 흘러내리는 땀을 느끼며 오늘의 수련을 되짚는다.쉽지 않았던 동작들, 한계를 넘어선 순간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자신. 잠시의 묵상 후,다시 사범님의 구령이 이어진다. 짝..
언제까지 이것만 해야 되지? 다른 운동을 해야 하나… 검도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검도의 시작은 언제나 서는 자세, 바로 그 기본에서부터 비롯된다.  자연체를 시작으로 익숙하지 않던 보통 걷기,  밀어 걷기, 견눔세 등의 기본 동작들을 반복하며,  큰 동작인 머리치기, 손목치기, 허리치기와 작은 동작들을 연이어 배웠다. 돌이켜보면, 매일같이 이어지는 기본 훈련 속에서도 처음 맞이한  일주일은 신기할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몸을 움직이는 낯선 경험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똑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은 점차 지루함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반복되는 기본 훈련 속에서 나의 시선은 늘 먼저 운동을 시작한 선배들에게 향했다.  땀방울을 흘리며 호구를 착용하고, 힘차게 연..
이모~~ 돈까스 안주 곱빼기요 한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검도장.도복을 걸치는 순간부터 끈적이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날카로운 죽도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 어떤 고통도 잊게 만드는 마법 같았다.대형 선풍기의 미약한 바람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기본기 훈련이 시작되었다.땀은 이미 제 세상을 만난 듯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호구를 착용하는 순간, 온몸은 찜통 안에 갇힌 듯 숨 막히는 고통에 휩싸였다.연격 훈련이 시작되자,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땀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상호 연습에 이르러서는 극한의 고통과 희열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다.모든 훈련이 끝나고, 정좌 자세로 앉아 선배의 "묵상" 구령에 맞춰 눈을 감았다.거친 숨을 고르며 흘러내리는 ..
밤의 적막 속, 검과 나의 조용한 대화 가을 바람이 솔솔부는 어느 저녁, 건물 지하 입구에 있는 간판을 나는 살포시 째려보고 있었다.간판에는 검도관이라고 적혀 있다. 고3때 TV에서 검도를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때부터 마음속 한귀퉁이에서 사부작 사부작 검도를 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그후로 10년이 지난후에 검도를 시작하기로 했었다. 간판만 보고 그날은 집으로 돌아 왔다. 그후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같은 건물의 지하에 가보니 검도관이 없어졌다.나는 검도를 하지말라는 신의 계시인가하고 돌아왔다. 그런 어느날 길을 가다보니 같은 이름의 검도관이 다른 건물에 있는것이 아닌가….그래서 바로 검도관에 들어갔다. 검도관은 깨끗했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고, 한쪽 중앙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도장 중앙에 태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