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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이야기/수필과 소설 사이

관장님? 사범님?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감도는 겨울의 도장. 텅 빈 공간을 울리는 숨소리마저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 
맨발로 디딘 나무 바닥에서는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련복 한 장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한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 섰다.

호흡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비로소 상대의 기척, 그 미묘한 움직임과 내쉬는 숨결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氣)의 줄다리기. 정신을 다른 곳에 두는 순간, 흐름을 놓치고 말 것이라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지독했던 추위는 희미해지고,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 열기를 뿜어내는 듯, 수련의 몰입이 가져다준 뜨거움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수련이 끝나자마자 뜨거운 물줄기 아래 몸을 녹였다. 얼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노곤함과 함께 기분 좋은 해방감이 밀려왔다. 옷을 갈아입고 관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은은한 커피 향이 먼저 나를 맞았다. 마침 관장님께서 다른 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는데, 나를 보시더니 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자리를 권하셨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무심코 던진 질문에서부터 '관장'과 '사범'이라는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평소 무심코 사용하던 단어들의 의미가 문득 궁금해졌다.

관장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셨다. 관장(館長)에서 '관(館)'은 집이나 건물을 의미하고, '장(長)'은 그곳의 어른이나 책임자를 뜻한다고. 이어서 사범(師範)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스승으로서 올바른 길을 가르치고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씀하셨다.
설명을 마치신 관장님, 아니 사범님께서는 옅은 미소와 함께 덧붙이셨다.

"나는 그냥 이 건물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사범으로 불러주세요."

그 말씀에는 직함 너머의, 지도자로서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분을 '사범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시합장이나 다른 도장에서 그분을 '사범님'이라 호칭할 때면, 몇몇 분들의 시선 속에서 스치는 의아함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치 '관장'이라는 명백한 직함을 두고 왜 굳이 '사범'이라 부르는지 묻는 듯한, 때로는 위계의 질서를 흔드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듯한 불편한 기색이다. 그럴 때면 나 역시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한 도장의 책임자라면, '관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권위에 기대기보다, 가르침과 모범이라는 스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진정한 '사범'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복을 입고 땀 흘리며 추구해야 할 진정한 무도의 정신이 아닐까.